흰둥이 e36 리스토어를 디자인카에 맡긴 지 거의 3주가 되어 가던 날 클카 카페 매물을 보고 있는 나란 놈. 결국 일을 내고 말았다. 원래 삼육이 데려오기 전에도 e36 컨버터블 매물을 계속 찾고 있었는데, 갑자기 SLK가 눈에 들어오더라.
요즘 벤츠와 다르게 귀여운 전면부와 작은 차체는 대형 세단을 몰고 다니는 내게 새로운 매력을 보여 줄 차량으로 다가왔고 몇 일을 R170이란 차량에 대한 정보 수집을 하며 어떤 차인지 알아보게 되었다.
그러던 중 내 예산에 딱 맞는, 그리고 그에 과분하게도 상태가 꽤나 괜찮아 보이는 녀석을 데려 올 기회가 생겼다. 내가 원하던 매물이 올라온 것이다. 잽싸게 매물이 올라온 날 밤 급하게 차주 분께 차량을 보고 싶다고 연락했고, 마침 다음 날 휴가였던 나는 오전 용무를 마치고 곧바로 SLK 차량을 보러 서둘러 이동했다.
하필 비가 와서 탑을 못 열어보면 어떡하지? 라고 생각했으나, 차주분께서 실내로 차량을 이동해주시고는 자유롭게 보라고 키를 건네 주셨다.
전면부 벤츠 삼각별이 요즘만큼 크지 않지만 어느새 내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고, 사실 차량을 제대로 보지 않아도 이미 전날 밤부터 사야지 하는 마음이 굳건했던 터라 차량 실내, 외관을 보면서 '이정도는 괜찮지' 라고 스스로 최면을 걸고 있었다.
탑을 여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24초. 주행 중에는 여닫이가 불가능하다. 요즘 차량들이 10초 안에 탑이 열고 닫히는 거에 비하면 굉장히 느리고 창피하지만 누가 컨버터블을 남 눈치 보려고 타나. 한적하게 달리면서 바람을 느끼는 차량이니 탑이 열리고 닫히는 속도 따위 중요하지 않다. 요즘 시세 500만원 내외로 컨버터블, 그것도 벤츠를 탈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 그렇게 어쩌다보니 이 낡아빠진 은색 벤츠 SLK 차량이 내 인생 첫 벤츠 차량이 되었다. 앞으로 이 녀석은 은둥이라 부르겠다. (e36은 흰둥이)
R170의 230K인데, K는 컴프레서(Kompressor, 수퍼차저)가 장착된 차량임을 의미한다. 6기통 차량을 또 구매할까 싶었지만 가격도 가격이고, 이미 흰둥이가 6기통이니 굳이 컨버터블 차량 사면서 성능을 따질 필요는 없었다. 1세대 SLK의 제원은 다음과 같다.
- 전장: 4,010 mm
- 전폭: 1,712 mm
- 전고: 1,274 mm
- 휠베이스: 2,400 mm
- 최고출력: 197마력(5,500 rpm)
- 최대토크: 28.5( kgm(2,500 rpm)
- 변속기: 자동 5단
- 서스펜션: 위시본 / 멀티링크
전장이 4미터라서 실제로 봤을 때 경차보다 약간 긴 느낌이고, 신형 프라이드와 전장이 거의 비슷하다. 그래서 아파트 경차 칸에 차량을 주차해도 이질감이 없다.(ㅋㅋ) 또 수퍼차저 차량이라 자연흡기인 흰둥이 삼육이를 탈 때의 묵직함과 달리 요즘 차량들처럼 큰 스트레스 없이 액셀레이터를 살짝만 밟아도 숭숭 잘 나간다. 또 전고가 1.2미터밖에 되지 않아서 도로에서 달릴 때 일반 세단이 SUV들처럼 느껴진다.
지금 이 차량을 데려온 지 벌써 3주가 다 되어 가는데, 이 녀석을 타면서 가장 불편했던 건 좁아 터진 시야(사이드미러, 룸미러)다. 사이드미러를 기어노브 옆에 있는 버튼으로 조작은 가능하지만, 시야가 너무 좁아서 가장 첫 개선 작업으로 광각미러를 달기로 했다. 전 차주분이 사이드미러는 바꾸지 않았지만, 룸미러가 너무 답답했는지 사제 부착식 룸미러로 원래 룸미러 위에 덮어뒀다. 순정 룸미러로 뒤를 보면 그냥 내 얼굴 보려고 쓰는 거울인가 싶을 정도로 시야가 정말 좋지 않았다.
자동차 동호회에서 수소문해서 광각미러를 저렴하고 빠르게 시공해주는 업체를 소개 받았고, 그 날 내가 올린 그 질문 글 하나로 엄청난 수의 R170 오너 분들이 찾아 와서 어디인지 연락처와 업체명을 물어봤다. ㅎㅎ
그곳은 바로 서울 북가좌동에 있는 비비미러 본점이다. 연일사라는 곳인데, 비비미러라고 검색하면 쉽게 찾기 어렵고, 한울 뉴타운 아파트 건물에 허름하게 자리잡고 있는 1층 상가이다. 여기서 택시 미터, 블박, 썬팅 등 여러 가지를 하는 업체들이 소소하게 모여있었다.
내 차량은 후기형이지만 정식 수입 차량이 아니라서 열선이 없기 때문에 작업 시간은 20분 정도면 충분하다고 하셨다. 가격도 10만원이 되지 않기에 그 만족감이 얼마나 클까 기대하며 길 건너편 카페를 찾았다.
커피를 촙촙 마시며 몇 분이 흘렀을까 내 차량 주변에서 이리 저리 움직이시던 사장님 모습이 안 보인다. 벌써 작업이 끝났나? 하고 가게에 가 보니 이미 사장님께서는 작업을 모두 마치시고 기다리고 계셨다.
초점이 다르긴 하지만 확실히 광각미러로 교체하니 보이는 범위가 확연하게 차이가 났다. 작은 차량임에도 주차할 때 주차 선도 보이지 않아 굉장히 스트레스였는데 광각미러 하나 바꾸니까 운전이 정말 너무너무 쉽고 재밌어졌다.
이제 제대로 이 녀석을 가꿔주기 위해 다음 스텝으로 시트를 모두 탈거하는 크리닝 작업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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